David Flo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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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정 밖의 진실, 각색이 만든 새로운 범인

실제 미제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가 개봉할 때마다 법조계와 언론에서는 늘 같은 질문을 던진다. 과연 이 영화가 재판 기록의 사실을 정확히 반영했는가, 아니면 극적 완성도를 위해 진실을 왜곡했는가 하는 문제다. 최근 몇 년 사이 한국과 해외를 막론하고 실화 기반 범죄 스릴러가 잇따라 제작되면서, 관객들은 스크린 속 범인과 실제 법정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인물이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조금씩 인지하기 시작했다. 특히 미제 사건의 경우 더욱 그렇다. 범인이 특정되지 않은 사건에서 영화는 공백을 메우기 위해 창작자의 논리를 동원한다. 그 과정에서 법정 기록에는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범인이 탄생하거나, 수사 과정에서 유력 용의자로 떠올랐으나 증거 불충분으로 풀려난 인물이 스토리상의 확정적 범인으로 둔갑하기도 한다.

각색은 사실의 단순한 재배열이 아니라 일종의 해석 행위다. 영화 제작자는 경찰 조서, 검찰 공소장, 법원 판결문, 언론 보도와 같은 원본 기록을 취재한 뒤 이를 극적 구조 속에 재배치한다. 이 글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에서 ‘가해자 특정 방식’이 원본 기록과 어떻게 다르게 재구성되는지를 유형별로 살펴보고, 각 유형이 관객의 진실 인식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비교 분석한다. 단계별로 정의를 확인하고, 유형을 분류한 뒤, 각 유형의 사례와 특징을 심층적으로 검토함으로써 스크린 속 범인과 현실의 범인이 괴리되는 지점을 정확히 짚어보고자 한다.

실화 영화의 각색은 크게 두 층위에서 발생한다. 첫 번째 층위는 사건의 ‘사실 관계’에 대한 변경이다. 발생 시각, 장소, 인물 간 관계, 대화 내용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두 번째 층위는 ‘범인 특정’에 대한 해석적 개입이다. 이는 원본 기록에서 범인이 누구인지 명확히 규명되지 않았거나, 복수의 용의자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제작진이 특정 인물에 범행을 귀속시키는 결정을 내리는 경우를 말한다. 이 글은 후자에 초점을 맞춘다.

범인 특정 방식의 각색은 세 가지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 수사 기록과 판결문에서 이미 범인이 특정된 사건을 영화가 그대로 따르는 ‘재현형’이다. 둘째, 법정에서 무죄를 선고받았거나 기소조차 되지 않은 용의자를 영화가 유죄로 암시하거나 직접 범인으로 지목하는 ‘지목형’이다. 셋째, 사건의 진범이 여럿일 가능성이나 공범의 존재를 지워 단독 범행으로 압축하는 ‘축소형’이다. 각 유형은 제작진의 윤리적 판단과 장르적 요구가 충돌하는 지점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분석 가치가 높다.

먼저 재현형을 살펴본다. 이 유형은 원본 기록에 대한 신뢰도가 높고, 사건의 전말이 비교적 명확하게 규명된 경우에 주로 나타난다. 제작진은 실제 범인의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거나 극적 허용 범위 안에서 가명으로 처리하면서도 범행 동기와 수법을 기록에 충실하게 따른다. 재현형의 장점은 관객이 실제 사건의 맥락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는 점이다. 법원이 확정한 사실관계가 화면에 그대로 옮겨지므로 ‘왜 이 사람이 범인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 법정 기록과 일치한다. 그러나 이 유형에서도 간과할 수 없는 문제가 존재한다. 수사기관이 특정 용의자에게 시선을 고정한 나머지 다른 가능성을 배제했을 때, 기록 자체가 이미 편향되어 있을 수 있다는 점이다. 영화가 그 편향을 그대로 답습할 경우 관객은 확증 편향을 강화한 서사를 소비하게 된다. 재현형은 그럼에도 ‘최소한의 각색’이 적용된 유형으로서, 실화 영화의 기준점이 된다.

다음으로 지목형을 분석한다. 이 유형은 가장 첨예한 논쟁을 불러일으킨다. 사건이 미제로 남아 있거나 기소가 어려운 상황에서 영화 제작진이 수사 기록 속의 유력 용의자를 범인으로 사실상 단정하는 방식이다. 법정에서는 증거 부족으로 무죄 추정의 원칙이 적용되었지만, 영화는 그 원칙 밖에 존재한다. 영화는 법적 유죄와 사실적 유죄 사이의 간극을 극적 긴장감으로 활용한다. 관객은 배심원도, 판사도 아니지만 영화가 제시하는 정황 증거와 심리적 개연성에 따라 스스로 판단을 내리게 된다. 여기서 문제는 제작진이 원본 기록에 존재하지 않는 결정적 증거를 창작해서라도 서사를 완결해야 할 유혹에 빠진다는 점이다. 실제 수사에서 확보하지 못한 자백 장면이나, 공개되지 않은 물적 증거를 영화 속에서 만들어내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이때 스크린 속 범인은 실재 인물이 아니라 각색이 낳은 서사적 구성물이다. 실제 피의자의 인격권과 명예가 훼손될 가능성도 이 유형에서 가장 크게 발생한다. 법원이 무죄를 선고했음에도 영화가 유죄를 암시함으로써 관객의 기억 속에는 영화적 범인상이 각인되기 때문이다. 해당 유형의 영화는 개봉 후 법조계와 언론이 사실 확인에 나서는 대표적 사례가 된다. 관객이 영화를 보고 실제 용의자를 사회적으로 매장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비판은 이 유형을 다룰 때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지점이다.

마지막으로 축소형을 검토한다. 이 유형의 각색은 복잡한 사건 구조에서 발생한다. 실제 수사 기록에는 공범의 존재나 추가 범행 가능성이 강하게 시사되는데, 영화가 이를 모두 생략하고 단일 범행, 단일 범인으로 서사를 정리하는 경우다. 축소형이 등장하는 이유는 서사 구조의 단순화에 있다. 영화는 기본적으로 명확한 대립 구도를 필요로 한다. 범인이 여럿이면 관객은 몰입을 방해받는다. 따라서 제작진은 사건의 핵심으로 판단되는 장면만 남기고 나머지 정황은 과감히 삭제한다. 이때 원본 기록에서 범인으로 지목된 인물을 그대로 유지하되, 그가 저지른 것으로 기록된 여러 범행 중 대표적인 사건만 부각하는 방식이 일반적이다. 축소형은 특히 장편 상업영화에서 두드러진다. 넷플릭스식 시리즈물과 달리 러닝타임에 제약이 있는 극장용 영화에서 제작진은 전체 사건을 하나의 진행형 사건으로 압축할 필요를 느낀다. 이 과정에서 피해자에 대한 보도 기록은 남아 있지만 가해자에 대한 정확한 판결문이 누락된 경우, 그 공백을 채우는 방식 역시 지목형과 유사한 문제를 낳는다. 축소형은 단독 범행으로 압축하면서 진범이 아닌 인물이 마치 단독 범인인 것처럼 비춰질 위험을 내포한다. 실제로는 다른 인물이 주도했는데도 말이다. 결과적으로 축소형은 관객에게 부분적인 진실만을 전달하며, 사건 전체를 조망하는 데 방해가 된다.

이처럼 범인 특정의 각색 방식은 단순한 창작상의 선택을 넘어선다. 관객은 영화를 진실의 기록으로 오인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실화라는 표기는 관객으로 하여금 비판적 거리를 두지 않게 만든다. 영화가 아무리 각색 고지 문구를 앞에 달아도, 관객의 뇌리에 남는 것은 스크린 속 범인의 얼굴과 행동이다. 따라서 실화 영화를 제작하는 측은 원본 기록과 각색의 차이를 관객이 인지할 수 있도록 고지해야 할 책임이 있다. 물론 이 글이 모든 각색을 부정적으로 바라보자는 취지는 아니다. 각색은 사실의 골격을 유지한 채 예술적 상상력을 더하는 창작 행위로서 가치가 있다. 문제는 사실의 골격 자체가 왜곡되었을 때 발생한다. 법정 기록에 존재하지 않는 범인이 영화적 논리에 의해 새로 탄생하고, 언론 보도에서 유력 용의자로만 거론되던 인물이 영화에서 확정적 범인으로 재탄생하는 순간, 그 영화는 실화 다큐멘터리를 넘어 하나의 허구 문학이 된다. 그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채 관객은 영화를 역사 기록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재판정 밖에는 법원이 선고하지 않은 진실이 존재한다. 그 진실은 수사 기록과 언론 보도의 조각 사이에 숨어 있다. 영화는 그 조각을 맞추는 하나의 방법론이다. 다만 영화가 조각을 맞추는 방식은 사건의 실제 해결이 아니라 관객의 정서적 해소를 위한 것일 때가 많다. 관객이 정의가 실현되는 순간을 목격해야 한다는 장르적 요구가 진실 규명이라는 과제를 압도하는 것이다. 실화 범죄 영화의 가장 큰 위험은 바로 여기에 있다. 사건의 미해결 상태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서사적 해결을 강제로 창조함으로써 실재했던 피해자와 용의자에게 새로운 상처를 입히는 것이다. 각색은 단순히 영화적 장치가 아니라 현실 인물의 삶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행위다. 따라서 실화 영화를 기획하는 이들은 창작의 자유와 사실의 존중 사이에서 끊임없이 균형을 잡아야 하며, 무엇보다 스크린 속 범인이 법정 기록과 보도 자료에서 도출된 실재 인물인지, 아니면 각색이 만들어낸 가상의 인물인지를 구분 짓는 명확한 프레임을 작품 속에 심어둘 필요가 있다.